교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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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활의 친구들

1. '평신도'라는 이름의 함정과 정체성의 위기

현대 사회의 고도화된 전문화 경향은 우리 삶의 편의를 증진시켰으나, 동시에 영적 자생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동차 수리'의 비유입니다. 과거의 '모델 A' 자동차는 구조가 단순하여 보닛을 열면 누구나 직접 고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기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밀한 '혼다' 모델은 전문가가 아니면 보닛을 여는 법조차 알기 어렵게 설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전문가'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 지점이 바로 마귀가 노리는 지점입니다.
마귀는 '평신도(layperson)'라는 단어를 우리 몸속의 기생충처럼 슬쩍 밀어 넣습니다. 'layperson'의 사전적 의미는 '비전문가'입니다. 스스로를 비전문가라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영혼의 수술대 위에서 전문가의 메스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환자로 전락합니다. 이것이 불러오는 '영적 마비' 현상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첫째, 우리는 영적 주체성을 상실한 종교적 소비자가 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대면하기보다 '예수 전문가'인 목회자가 제공하는 종교적 상품과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전문가의 인도가 없이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수동적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겸손'이라 오해하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진단하자면 이것은 명백한 **'배반(Treason)'**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꾸어야 할 성품의 개발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전문가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존엄한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기묘한 마귀의 전략을 단호히 거부하고, 평범함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부활의 현장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2. 부활의 목격자들: 평범한 친구들이 전하는 위로

예수님의 부활은 대중을 압도하는 화려한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활은 서로의 허물과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긴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의 그물'**을 통해 전달된 사건이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결코 영적 엘리트가 아니었으며,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흔들리는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당시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이들이 '첫 목격자'라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2.
열한 제자: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하면서도 동시에 '의심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무리였습니다.
3.
도마: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노라 고집 피우던, 지독한 회의론자였습니다.
4.
야고보: 생전의 예수를 냉소하며 믿지 않았던, 상처 입은 관계의 형제였습니다.
5.
바울: 자신을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엑트로마(조산아/사산아)'**라 부르며, 사도가 될 자격이 전혀 없음을 고백했던 박해자였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의 포용력입니다. 주님은 모든 의심이 해소된 완벽한 전문가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의심하는 자들조차 사명의 자리에 포함시키셨습니다. 부활은 결코 '자격 있는 엘리트'를 선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은 자격 없는 소비자들에게 '친구'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며 관계적 연대로 초청합니다. 이 '관계의 그물' 안에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며, 서로의 독특함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적 응답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3. 관계적 존재로의 초대: 삼위일체와 세례의 의미

기독교적 정체성의 뿌리는 우리가 '관계적 존재'로 부름받았다는 신비에 닿아 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 속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습니다. 세례는 단순히 종교 단체의 멤버십 등록이 아니라,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적 우정' 안으로 들어가는 장엄한 입례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행위에 주목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저녁,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emphysao)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흙덩이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던 창조의 순간과 정확히 겹칩니다.
삶 그 자체로서의 부활: 창조의 숨결이 인간을 생령이 되게 했듯, 부활의 숨결은 우리를 영적으로 다시 살게 합니다. 즉, 부활은 일상에 덧붙여진 장식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시작이자 '삶 그 자체'입니다.
상호 내주(Co-inherence)의 신비: 삼위일체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서로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은 초연한 지성이나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본질상 관계적인 분이십니다.
우리는 관계적인 방식 말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전문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적인 관계망 속으로 우리 삶을 완전히 밀어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4. 결론: 소비자에서 '부활의 친구'로 나아가는 길

영국의 문학가 체스터턴은 사람들이 노래와 웃음조차 전문가에게 맡기고 마이크 앞의 한 사람만 바라보게 될 시대를 우려하며 경종을 울렸습니다. 영성 또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종교적 시장터에서 구경꾼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직접 대면하는 '기본적인 인간 활동'의 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의 마당에서 회복해야 할 **'부활의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직접적인 관계 맺기를 통한 존엄성 회복: 영혼의 문제를 전문가에게 위탁하던 수동성을 버리십시오. 하나님 및 타인과 삶을 직접 공유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본연의 자부심(Dignity)**이 회복됩니다.
2.
일상의 경이 앞에 머물기: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행위, 아기의 이름을 짓는 소박한 일들 속에서 창조의 기적을 발견하십시오. 그 모든 순간 그리스도가 주인 되심을 경탄하는 관조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3.
공동체적 응답의 실천: 나 홀로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친구들'과 엮여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서로의 독특함에 머리 숙이며 동료애를 나누는 것이 부활의 실천입니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영적 비전문가라는 그늘 뒤에 숨어 마비된 채 살아가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깊이 엮인 **'부활의 친구'**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 여러분의 고귀한 지위를 회복할 때, 여러분의 삶은 비로소 누군가에게 부활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을 실천하는 전문가'가 되어, 하나님의 숨결이 가득한 풍성한 관계의 영성을 누리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